샘터
‘샘터’라는 이름의 잡지를 참 오랜만에 본다. 예전에는 정말 많은 잡지들이 있었는데. ‘리더스다이제스트’라는 이름의 영한본도 있었고 ‘가이드포스트’라는 기독교 잡지도 있었고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도 있었고. 그중 샘터도 있었고. 잡지들이 모두 과월호가 있을만큼 많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과월호밖에 남지 않았다. 매월 오는 큐티잡지를 제외하면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긴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책에 밀려 잡지를 못 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실려서 더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공감이 되면서도 언제나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니 약간은 느슨한 감정이 들어서 지루해져졌다고나 할까.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삶이 더 힘들어져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공감을 했지만 내 삶에 치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미루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샘터’는 옛생각을 나게 함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공감이라는 코드를 되살려 주었다. 잡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독자들의 투고란과 하나의 주제에 맞춰 사람들이 보내온 이야기들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모여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는 그런 특징이 있는게 이 샘터라는 잡지였지 하고 잡지 본연의 모습을 발견해낸듯이 기뻐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여름호 기념으로 실린 특집 ‘서늘맞이의 추억’이라는 글을 보면서 나는 어떤 여름에 관련된 추억이 있었을까 추억을 더듬어 보게도 된다. 그리고 앨범을 찾아 본다. 오래된 사집첩 속에는 예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서 물장구 치는 사진부터 요즘 유행하는 워터파크까지 다양하게도 돌아다녔다. 한권의 잡지로 인해서 가족끼리 추억을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가족이라 할지라도 얼굴도 못 보고 지나갈대가 많다. 더군다나 십대의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날이 선 그들에게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한다. 기껏 얘기를 꺼내봐야 성적 얘기쁜이고 공부 얘기뿐이고 아이들은 또 공부를 하기 싫으니 반발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은 어떨까. 언젠가 그들이 갔었던 여행지를 추억삼아서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나차럼 사진이 있는 경우라면 그것을 꺼내두고 보아도 좋겠고 요즘 시대라면 저장된 사진들을 큰 화면에 띄워 놓고 보아도 좋겠다. 저마다 하나쯤은 다들 추억이 있기 마련이고 아니라면 부모들이 자신들이 겪은 경험담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줘도 가족의 분위기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책과 달리 잡지는 짧게 읽을수가 있다. 한꼭지마다 끊어서 읽을 수 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한권의 잡지를 한달릉을 두고 보아도 된다. 싫증을 금방 내는 아이들도 쉽게 읽을수 있을 것이다.
더운 이 여름 이번주가 휴가의 절정이라고들 한다. 다들 여기저기 떠남으로 인해서 고속도로도 밀려가고 있다고 한다. 휴가길에 잡지 샘터 한권 챙겨가는 건 어떨까. 가는 길이 밀린다면 동행자에게 운전을 맡겨둔 채로 조수석에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길이 밀려 짜증내는 십대들에게도,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길에도, 또는 갈 곳이 없어서 못 가거나 시간이 없어 휴가를 떠나지 못한 힘겨운 인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한숨을 쉬고 여유를 찾아 볼 기회를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얇은 책 한권이 주는 큰 여유를 부디 누리시길.
걸 온더 트레인
어디선가 본 듯한 플롯, 어디선가 본 듯한 주인공,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 솔직히 말해서 장르소설이 이렇게 되면 너무 뻔한 이야기로 흘러 들어가버려 재미는 반감되고 기대했던 마음은 어느덧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란 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원래 처음 보는 작가에 대한 책은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보기 때문에 제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떠들어 댈지언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일로 여기는 내 버릇 때문일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좀 뻔하다고 했다. 세명의 여자주인공. 그리고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기껏 인물들을 넓혀봐야 그 중 한 여자의 전남편이라니.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보았던 책 중에서 ‘나를 찾아줘’보다는 훨씬 재미있다고 말할수 있을 듯 하다. 여기서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의 반대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 뻔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작품은 지루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그 이후의 작품 ‘다크플레이스’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영화는 훨씬 더 잘 만들어졌고 수작이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디언에서 말한것처럼 화려함은 덜할지라도 견고한 소설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틀에 딱 딱 들어 맞는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틀에 곽꽉 맞춤으로 인해서 숨쉴수 없이 빡빡해졌지만 그것 또한 매력으로 읽힌다. 누군가는 빨리 읽지 못해서 안타까웠다는 평을 두었다. 나는 그마음이 이해가 간다. 정신없이 넘겨지는 페이지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몇몇 스릴러처럼 쫄깃거리는 맛은 덜하다. 아니 없다. 하지만 그 쫄깃함보다는 닭가슴살의 퍽퍽함을 생각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그 퍽퍽함 속에서 숨겨진 재미를 찾는 느낌이란 스릴러의 페이지 넘어가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세 여자가 있다. 요즘 세여자의 삼각관계는 정말 자주 쓰이는 설정이다. ‘꽃사슬’에서 미나토 가나에도 세명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검은수련’에서도 한 마을에서 각기 다른 연령의 세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이번의 세여자는 다르다. 다 비슷한 또래이다. 그리고 시대도 다 똑같다. 단 한 여자만이 일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일년이라는 시간상의 차이는 책속에서 현재와 거의 다없이 쓰이고 있다. 일년전에서부터 시작해서 거침없이 죽죽 당겨져서 결국은 지금 다른 두 여자가 살고있는 이시간까지 접근해오기 때문이다.
자, 여기 한 여자가 있다. 매일 같은 통근기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면서 다른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길에 있는 집을 쳐다보면서, 그것도 매일 같은 집을 쳐다보면서 그 집의 커플을 보는 것을 재미로 삼는 그런 여자다. 여기에서 의문 한가지, 어떻게 그 여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할수 있을까. 사람이 출근시간이야 일정하다 할지라도 돌아오는 시간은 아무래도 몇번은 달라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더구나 홍보일을 한다는 그녀가 시간을 맞추기란 틀림없이 무리가 될텐데 신기한 일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두가지. 기차가 아무리 느리게 지나간다 하더라도 휙 하고 지나가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그 커플의 일상을 알고있다. 상상에서 기인된 것이 더 많지만 그들의 어떤 방에 어떤 커튼이 쳐저 있고 대충의 구조까지 파악을 하고 그들의 생김새도 뚜렷이 파악하고 있다. 가능한 일일까. ‘비포아이고’라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죽음 이후 부인을 구해주려는 데이지를 보고 오지라퍼라는 단어를 썼었다.
여기 그녀보다 더한 오지라퍼가 등장하셨다. 자기가 아는 사람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그저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철길위에 있는 집. 그 집의 여자가 실종된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그녀를 구하려는 시도를 하는 여자가 여기 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알콜중독이라 (본문에서는 중독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마셔대면 중독이나 다름없다.) 기억나는 것도 전혀 없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상 최고의 오지라퍼 레이첼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클럽 페르소나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분명 내 마음은 이미 지나쳤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가 잡아 끌었다. 무엇인지 딱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계속 잡아 끌었고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수작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탄탄하다. 건축을 공부한 작가라서 그럴까. 독특한 건물을 묘사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엔딩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음에도 응? 으응? 이라는 의문이 들게했다. 서형사는 여기서 끝? 아니면 다시 다른 시리즈로? 김구는 또 왜? 무언가 정확히 완결을 맺지 못하게 된 인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독서토론이 필요한가보다. 같은 책을 읽고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되는 그런 모임 말이다. 누군가 독서모임을 한다면 다음에는 이 책으로 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나의 의문도 해소할 겸 말이다.
이 책에게 계속 마음이 끌렸던 것은 두가지다. 다른 유명작가들처럼 작가가 유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목에서 확 이끌린다는 것 보다는 일단은 주인공 캐릭터이다. 형사 캐릭터. 많다. 너무 많아서 그냥 일반적인 스릴러나 추리소설에서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릴 정도로 다른 유명하고 많은 형사들이 줄줄이다. 그러나 이 작가가 만들어낸 형사 캐릭터는 독특하다. 여형사다. 기대를 한 사람을 실망을 할수도 있겠다. 여형사가 뭐 그리 독특한가 말이다. 요즘 시대에. 그리고 다른 책에서도 여형사는 이미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을 할수도 있겠다.
아직 남았다. 40대다. 여기서 조금은 으응?? 할 수 있겠다. 끌려오는가. 조금 더 당겨보자.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이 있으며 평범한 교사생활을 하는 남편이 있다. 그냥 평범한 캐릭터잖아.하고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그랫도 형사 캐릭터 치고는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다. 생각해보라. 형사 해리가 결혼생활을 했었는가? 결혼은 커녕 있는 여자친구들도 관리 못해서 뚝뚝 떨어져 나가는 케이스였다. 형사 율리아는 어떤가. 자기 밥 한끼도 대충 챙겨먹을만큼 혼자 사는 싱글족의 일상이다. 그런만큼 희귀한 캐릭터가 아닐수 없다. 거기다 입고 다니는 옷이라니. 주름치마가 왠 말인가. 목숨처럼 들고 다니는 백은 또 어쩌고. 영화로 만들면 코믹액션이 나올법한 그런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참형사를 다루는 카리스마는 굉장하다.
두번째로 관심이 갔던 것은 플롯이다. 클럽이 있다. 춤을 추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는 클럽이다. 그러나 조건이 까다롭다. 역사속의 인물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동명이인인 셈이다. 그렇다고 꼭 유명하지는 않아도 된다. 일단 존재했던 인물이면 되고 또 그 유명함도 좋은 것으로 유명한지 나쁜것으로 유명한지도 따지지 않는다. 이 클럽에는 소위 매국노라 불리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니 말이다. 내 이름도 만화영화 주인공과 같아서 놀림을 받았던 적이 있는지라 (그래봐야 다 커서의 일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한번에 기억을 해주니 더 좋았다) 그곳에 가입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이 두 가지 특징 덕분에 이 책에 이끌렸지만 묘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는 작가 덕에 죽죽 읽히는 속도감을 느낄수가 있었다.
굳이 장르를 다지자면 스릴러보다는 한국식 추리소설에 가깝다. 클럽 페르소나의 창시자이면서 건물의 주인인 허균이 죽었다. 목욕탕에서. 발견한 사람은 그 곳의 지배인. 비누가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미끄러져서 뒤통수를 찧고 죽었다는 결론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부검으로 자세한 결론을 내려한다. 나온 결론은 누군가에 의해서 목이 졸렸다고 한다. 명백한 타살이다. 그 시간에 과연 누가 클럽에 있었고 누가 이 사람에게 원한이 있었으며 무슨 이유로 그를 죽였을까.
이 사건에 우리의 아줌마형사 서형사가 등장을 하게 된다. 독특한 캐릭터니만큼 이 캐릭터를 잘 살려서 다음에도 또 시리즈 격으로 나와주면 줗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대로 묻혀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캐릭터긴 하다. 신참형사인 홍형사와 더불어 콤비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근무처가 달라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인사이동을 시켜서 붙여주어도 좋을 듯 하고. 오랜만에 맘에 드는 한국작가의 책을 만났다. 또 없을까 하면서 뒤적거리게 된다. 두번째 장편소설. 일단은 첫번째를 찾아 읽고 세번째를 기다려볼 그런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