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공주들, 마법사의 제자들, 행복을 인터뷰하다

무서운 공주들

일단 제목에 마음이 끌린다. 무서운 공주들이라니. 자고로 ‘공주’라 하면 누구나 생각하듯 샤랄라 공주 옷을 입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더러운 것 곁에는 전혀 가지도 않을 것 같고 왕자님들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런것이 공주 아니었던가. 그러니 당연 앞에 붙는 수식어도 예쁜, 아름다운, 우아한, 이런 수식어가 붙어야 함이 마땅하거늘 ‘무서운’이라니 이 무슨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이란 말인가. 하지만 목차를 보면 금세 왜 이 조합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공주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공주와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아주 멀다.

일단 전쟁을 이끈 공주들이 있는가 하면 음모를 꾸민 공주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공주인 왕위를 꿈꾸던 공주들도 있다. 그리고 공주와은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난잡한 공주와 더불어 쓸쓸하게도 미친 공주로 끝을 맺고 있다. 하나같이 다 ‘무서운’ 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공주들이다. 우리가 앞에서 생각했던 공주들은 동화책에서나 보던 그런 공주들의 모습이고 이것이 진정한 현실의 공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자고로 현실이란 이렇게 잔인하고 잔혹한 법이거늘 ‘공주 옷 입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픽션일뿐인 것이다하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조금은 약간은 어렸을적 꿈꾸던 이야기가 비누거품이 되어 터져 버리는 것 같아서 아주 약간은 아쉽다.

일단 이 책에서 공주라고 정의하고 있는 범위는 넓다.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사이에서 태어나는 여자아이를 공주라고 규정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공주는 결혼을 통해서 공주의 칭호를 받게 된 사람이나 넓은 의미에서는 공작부인까지도 모두 공주라고 의미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라는 의문은 조금은 묻어두고 봐도 좋겠다. 역사속에서 등장하는 공주들은 실제의 이야기와 그리고 전설속의 이야기가 반반이다. 최근의 공주일수록 드러난 행적을 잘 알 수 있고 사실적인 기록이 많은 반면 아주 오래전 공주이거나 또는 아주 작은 나라의 공주 같은 경우에는 남겨진 역사적 기록이 별로 없어 그 나라에서 전해지는 전설로만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전설은 이렇고 실제는 어떠하다고 다시 설명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일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접어두어도 좋겠다.

공주라는 이름의 이미지답게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고 때로는 자신을 지키려고 그리고 때로는 왕위를 뺏으려고 전장에 직접 뛰어든 공주들이 있다. 아버지가 가두다시피하여 키운 한 공주는 어느날 해적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운명이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해적으로써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 생활에 잘 적응한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는 딱 맞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공주로 태어났지만 뱃사람으로써 더 행복했을 것이다. 이렇듯이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 공주들의 인생이 이 책 한권에 오롯이 녹아있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탓하며 내 운명은 이래서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주로 태어났어도 힘들게 살아온 인생들도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적인 즐거움과 전설속의 이야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 때로는 오싹할만큼 끔찍한 이야기들도 있고 때로는 안됐다하는 마음이 들 만큼 슬픈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왕이 나이가 어리면 중전들이나 대비가 수렴첨정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공주 이야기도 여기에 들어갔으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왕위를 얻으려고 노력한 공주편에 말이다. 아마 꽤 많은 공주들이 포함되지 않을까. 그 중에는 대표적으로는 장희빈도 포함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공주들도 꽤 무서운 공주들이 많은 듯 하다. 왕들에 묻혀서 빛을 발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무서운 공주들 편을 모아보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 되지 않을까. 한여름 뜨거운 햇살 만큼이나 뜨거운 공주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추천.

마법사의 제자들

‘마법사’가 제목에 들어가는 책을 이번 여름에만 두권째 읽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마법사와 형사들의 여름]이라는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마법사가 나온다. 마법을 부리는 ‘마리’라는 캐릭터와 형사가 콤비가 되어 벌이는 이야기. 그렇다면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떤 마법사가 나올까 하면서 기대를 가지고 본다면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 책에서는 마법사 같은건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목을 다시 읽어보자. 마법사의 제자들. 제자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마법사가 있고 그에게서 마법을 배워서 마법을 부리는 해리포터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평범한 인간이 바이러스에 접촉이 되어서 죽다 살아나고 그 이후로 생긴 초능력때문에 마법사의 제자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짚어보자. 바이러스. 보통때는 신경도 쓰지않고 살다가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대형 사건이 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그때서야 뒤늦게 대책을 마련한다거나 아니면 연구에 매진한다거나하는 사후약방문 체제가 완성이 된다. 사실 이쪽 관련 일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이 평상시에도 바이러스에 대비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이러다가 또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면 그때서야 무언가 대비책을 찾느라고 허둥지둥 댈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교스케처럼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없다해도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막을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외국에서도 수퍼바이러스가 문제가 되고 있다. 병원에서 흔히 생기게 되는 바이러스인데 개끗하고 소독이 되어 있는 곳에서, 절대 바이러스 생길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바이러스들이 자란다. 그 바이러스는 이미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들에는 면역이 되어 있어서 어떤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다. 그야말로 수퍼급이다. 그러면 또 그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서 더 많은, 더 독한 약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줄다리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옜날 고대시간속에서도 존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살아 남는 것은 바이러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든다.

이 책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뇌염’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의 대처는 이제는 종식되었지만 한국에서의 메르스와 비슷하다. 사람들의 접촉을 통해서 감염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치사율이 꽤 높다는 것, 그래서 병원을 페쇄하는 것까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 왔던 일들을 그대로 보는 듯 해서 이 책이 오래전에 쓰여졌다면 미리 예언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단, 책에서는 허둥대지 않고 한 병원을 거점병원으로 삼았고 그 속에서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래도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긴 했지만.

그 바이러스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난리통에서 살아난 단 세 명, 아니 한 명이 더 있기는 하지만 단지 살아만 있을뿐 의식이 실종된 상태라 살아있다고도 죽었다고 할수가 없다. 살아난 단 세명을 연구하기로 하고 병원에서는 독자적으로 팀을 꾸리게 된다. 그 세 명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능력들을 하나씩 가지게 되는데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어떠한 곳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서 자신들의 인생은 또 어떻게 변화가 될 것인가.

만약 내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쓸까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초능력을 사용한 영화나 드라마들도 꽤 나온 편이다. 그런면에서 보았을때는 이 책은 신선한 소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사태와 맞물려 보았을때 유사한 점이 많이 있고 그것이 더 큰 이슈를 불러 내었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든지 또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없는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가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과는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럼으로 인해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하루하루가 똑같은 삶을 살게되는 주인공의 일상을 그린 영화를 본적이 잇다. 자고 일어나면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하루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지겨운 주인공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노력도 한다. 이 책의 결말 또한 그 영화와 비슷하다. 과연 그들의 인생은 이미 보아진대로 일어날 것인가 또는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자신들이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해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행복을 인터뷰하다

인터뷰이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인터뷰어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그냥 물어보는 것에 답만 해주면 되는 것이 인터뷰 아니냐며 쉽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내가 물어보고자 하는 것이 그냥 일반적인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 특정분야를 가지고 물어볼 때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 상대방으로부터 답을 얻어 낼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질문도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 둘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런 인터뷰를 한 달에 한명씩 해 온 정신과 의사가 있다. 그것도 몇명을 그냥 한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총 6년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물어왔다. 그 중 앞의 3년분을 추리고 또 그 중에서도 추려서 이 책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물어본 핵심은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느냐” 모든 다른 질문들은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관도 다르고 그러므로 인해서 행복이라는 것도 다르게 느껴질것이다. 그러니 행복이라는 것도,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 어떤 누구도 똑같이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예인에 이르러 산악인 또는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생군들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서 그들이 행복해지게 되었냐는 말로 결론은 맺고 자신이 생각하는 긍정처방전을 적고 있다. 서로간에 이야기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살아온 인생에 따라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그것을 채우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고 자신의 가족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다.

요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날씨가 더운때에는 짜증도 쉽게 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아지게 된다. 광고 문구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발악을 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런 삶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물으면 누군가는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 행복이냐는 것을 물어보냐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행복이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질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게 산다 할지라도 찾아보면 찾아지지 않을까.

여기에 실린 사람들이 다들 잘 사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다. 그렇기는 하다. 여기에 실린 사람들이 지금 상황이 어렵다거나 밥을 못 먹고 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들도 충분히 어렵게 살아온 기간이 있었고 자신의 앞에 장애물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다만 자산이 가지고 있는그 행복을 통하여서 이겨 내었을 뿐이다. 힘들다고 하는 당신도 충분히 이겨낼수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인터뷰가 들어온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가만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내가 과연 나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내려지는 긍정처방전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직접 저자를 인터뷰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인터뷰를 하러 다니기는 했어도 자신의 이야기는 없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글을 쓰는 그도 자신의 힘든 때가 있었고 그것을 이겨내었을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도 있을 것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해피올로지스트라고 주장하는 그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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