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파편, 서른 개의 관, 악녀를 위한 밤

포탄 파편

아르센뤼팽 전집에서 뤼팽을 빼면 찐빵에서 팥을 뺀 밍밍한 맛일까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아예 색다른 맛이 될까.공식적으로 사랑에 빠져 죽은 걸로 되어 있는 듯한 뤼팽은 이 책에서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이름은 등장한다. 뒷부분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나오긴 하지만 단지 이름만 나올뿐 크게 언급되거나 중요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게 또 묘하다. 뤼팽이 빠지면 재미가 없을 것만 같던 이야기가 오히려 다른 주인공을 하여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것이다. 거기다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남녀간의 이루지 못할 사랑이야기가 주요한 이야기가 되다 보니 더욱 애절하고 절절하고 긴박감이 줄줄 흐른다.

여기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오늘 아침 갓 결혼한 새 커플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오래전에 사 두었던 성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즐거운 삶을 꾸리고 싶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던 엄마가 거기서 죽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가지 않으셨다. 그곳을 이제 새로운 신혼부부에게 주시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하는 새신랑과 새신부. 그들을 가면서 신랑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이야기와 자신도 죽을 뻔 했던 이야기. 그러면서 그때 거기에 있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여자를 잊을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옷의 세부적인 묘사까지 생생하게 증언을 하며 그곳에 다다른 그들은 오래전 아버지가 절대 못 들어가게 했던 한 방에 이른다. 아버지는 오늘 아침 그곳의 열쇠를 딸에게 주신 것이다. 그 곳에는 엄마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 간 곳에서 어머니의 전신 초상화를 보게 된 새 신랑은 기겁을 하고 쓰러진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던 그녀, 입은 옷까지도 똑같은 그녀, 그렿게 잊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던 그녀가 거기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가 자신의 원수의 딸이라니 이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더욱 슬픈 비극이 아닌가. 새신랑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미 죽었다는 장모는 뒤로 한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만 할까 아니면 이미 죽어서 복수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딸이라도 괴롭혀서 자신만의 복수를 해야할까. 그러기에는 자신이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듯 하고.

결국 그의 선택은 그녀를 버려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성을 나온 그에게 보였던 것은 동원령. 전쟁이라는 배경은 묘하게 그를 잡아당기고 그는 결국 군대에 합류하게 된다. 아무것도 세상에 미련이 없어진 그는 오히려 전장에서 앞장서며 큰 공을 세우고 점점 진급을 하게 된다. 군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뽑히며 여러가지 역할을 하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 초상화에서 보았던 인물과 똑같은 인물을 계속 보게되는 묘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엄마는 정말로 죽은 것일까. 그렇다면 자꾸만 보이는 비슷하게 닮은, 그렇지만 옷은 똑같은 저 여자는 누구이며 또 그녀와 얼굴이 닮은 소령은 누구일까.

전쟁이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것이다 보니 이야기는 스케일이 크다. 한 나라의 군주가 등장을 하고 전쟁속에서 사랑이 있고 전우애가 등장을 하고 가족간의 사랑도 드러난다. 새신랑은 이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내고 새신부를 다시 사랑할수 있을까? 포탄파편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뤼팽이 없어도 충분히 탄탄하고 재미나는 이야기. 하지만 뤼팽의 이름을 한번 언급해줌으로써 또 한번 사랑들의 생각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주는 교묘한 트릭을 숨겨 놓은 작가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서른 개의 관

포탄파편에 이어 황금삼각형을 너머 이 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커플들이 등장을 한다. 이 책에서는 그나마 뒤쪽에 연결되는 케이스이긴한데 뤼팽시리즈라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추리소설도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전반부였다. 황금삼각형의 이야기처럼 이 책에서도 절정의 순간에 뤼팽이 등장을 한다. 주인공들이 위험에 빠져 있어서 누구라도 도움이 없다면 그냥 주인공이 죽는 사태가 벌어질만한 그런 결정의 순간에 떡하니 나타나서 도움을 준다. 그렇게 됨으로 인해서 이 책의 주인공은 당신들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밝혀주듯이 말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같은 이름을 쓰면서 등장을 하는 뤼팽. 이번에는 전편의 주인공인 파트리스와 같이 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서로서로 다 안면이 있는 관계들이다. 그 세계가 워낙 입소문이 빠른 동네다 보니 누가 어떻더라 하는 것은 저절로 알기라도 하는 것 같다.

분명 픽션속의 주인공들인데도 불구하고 살아서 움직이는 이 사회의 사람들과 같은 인맥을 유지하고 자기네들끼리 도움을 주고 그럼으로 인해서 부패를 척결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기네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가곤 한다. 신기한 일이다. 이러니 책 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책에 몰입해서 보는 것이겠지만 영화같은 것을 보고 따라서 저지르는 범죄가 있다고도 하니 너무 몰입하는 것도 때로는 사람의 인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드한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끔씩은 소프트한 책으로 마음을 달래가며서 볼 필요가 있다. 역시 편독은 좋지 않은 것일래나.

누가 보아도 이쁜 한 여자가 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허락을 하지 않으시고 결국은 납치사건으로 이어진다. 그 사건이란 당연히 남자가 여자를 데려간 일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는 어쩔수 없이 딸을 결혼시키게 되지만 이 가족의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딸. 아버지는 그 아들을,즉 자신의 손자를 납치한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낙심한 딸은 결국 수도원으로 들어가버리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결혼을 하기위해서 남자와 결합해 납치극을 벌인 딸이나 그 납치극에 대항한다고 손자를 다시 납치한 아버지나 어쩜 그리도 닮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망가져버린 딸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도원이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아 결국은 나와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딸. 어느날 자신의 이니셜이 적힌 오두막을 보게 되고 그 흔적을 따라서 의미를 찾기 위해서 모험을 하게 된다. 어느 바닷가로 다다른 그녀에게 다가온 한 섬여자는 그여자의 이름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른개의 관이라고 불리는 바다에 위치한 섬. 과연 그녀는 아버지와 아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여기까지 읽었을때 생각했어야 했다. 과연 그녀를 이곳까지 암호를 적어가며 이끌어 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녀가 가족들을 만났을때 가장 이익을 얻는 사람과 가장 피해를 볼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을 깨달았어야 이후로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있었을텐데 이야기에 빠져서 그녀를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나는 그곳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언제나 섬여자가 돌아올때면 마중을 나왔다던 그녀의 아들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급하게 집으로 향하는 두여자의 눈에 비친건 아들의 특징인 빨간 베레모를 쓴 한 아이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향해서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선생이라던 하얀 베레모를 쓴 사람 역시 총을 가지고 어딘가로 뛰어가고. 그 아이는 이렇지 않았다는데 더없이 순하고 착하고 명랑한 아이였다는데 어떻게 엄마가 오는 것을 알고 돌변한 것일까. 자신이 낳은 아들을 키워보지도 못하고 십여년이 흘러 다 큰 모습으로 마주한 게 된 모자가 과연 눈물의 상봉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알아볼 수나 있을까? 이후로부터 펼쳐지는 모자간의 액션 어드벤쳐는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을만큼 절박하고 스릴넘친다. 한 가족의 바극이 남긴 이야기. 그러면서 한 사람의 욕심이 벌어지는 참사를 그린 이야기. 이제 중반부도 한권의 이야기를 남겨놓고 있다.

악녀를 위한 밤

작가의 이름이 낯선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억 속 저편 어딘가 숨어 있던 그 책을 떠올리게 했다. 하얀 바탕에 우체통이 하나 그려져 있던 표지. 그리고 숫자로 시작되는 제목. [658,우연히]라는 뜬구름 잡는 형식의 제목으로 이루어진 그 책은 존 버든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도록 각인시켜준 작품이었다. 마치 행운의 편지처럼 이어지는 형식의 이야기가 얼마나 심장을쫄깃거리게 했었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읽은 책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숫자에 얽힌 미스터리가 무엇일까를 내내 궁금해 하면서 읽었던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이다. 전작에 비해 페이지수가 격하게 많다. 두툼한 무게가 날 잡아드시오 하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에 비해 표지는 아주 순수하다. 발레리나의 튀튀를 연상시키는 시스루형식의 치마와 한쪽 팔이 나와 있는 한장의 사진. 이 여자가 제목에서 말하는 진정 그 악녀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곱다. 반어법으로 곱고 이쁜 여자가 악녀일까. 제목과 표지 딱 둘만으로도 온갖 상상을 해 보게끔 되는 묘한 매력을 주는 존 버든의 소설이다. 파스텔톤의 파랗고 고운 빛깔의 표지와는 다르게 이야기는 처음부터 살벌하게 시작된다.

명망높은 정신과의사가 젊고 이쁜 여자와 결혼을 한다. 온갖 유명인사들은 다 총출동한 그 결혼식장에서 정원사이자 의사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건배를 제의하기 위해서 별장에 들어간 신부가 목이 잘린채 신랑에 위해서 발견된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이유로 왜 누구에게 결혼식날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당해야만 했을까. 그녀가 건배를 제의하러 갔다던 멕시코인 정원사는 아무데서도 찾아볼수 없고 그곳은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던 것 마냥 깨끗하게 보존되어 잇다. 과연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또한 그가 과연 범인은 맞는 것일까. 그 무렵 옆집의 여자도 같이 실종되었고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전부터 두사람의 관계가 수상했다면서 그 둘이 같이 달아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옆집 남자는 또 어떤 입장이 되는 것일까.

전작에 이어서 역시 이 책에서도 경찰에서 은퇴한 거니가 등장을 한다. 대부분의 스릴러들이 현직 형사나 탐정 또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작가는 은퇴한 그것도 약간은 이르다 싶은 나이에 은퇴한 그런 경찰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럼으로 인해서 조직세계에서 오는 강압성을 조금은 탈피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서 일을 하다보니 약간은 단조로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체계도 잊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이 책에서도 거니의 친구이자 현직에 있는 경찰, 존 하드윅이 등장을 한다. 결혼식 날 죽은 신부의 사건의 진척이 없자 그녀의 엄마는 개인적으로 일을 부탁하려고 하고 그 와중에 초기단계에서 수사를 맡았지만 지금은 뒤로 물러나버린 그가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비단 거니와 이 사건을 연결해줄 뿐 아니라 경찰과의 협조를 통해서 거니가 이 사건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도 하고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을 맡기도 한다. 주인공은 거니이지만 오른팔과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현직형사와 전직형사의 약간은 부조화스러운 콤비라고나 할까.

이미 수개월이 지나서 증거도 없고 현장 상황도 모르는 거니에게 실시간으로 찍어 놓은 결혼식 비디오는 아주 중요한 증거로 남게 된다. 거니는 여러번 그 비디오를 보면서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나중에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게도 된다. 아무리 형사라 해도 사람인 이상 놓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진리에 따라 그 또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형삭의 직감이라는 것이 아닐까.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면이 아마도 그런 면이지 싶다. 사람들은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교육을 받는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도 있다.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서 자신이 하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흥미와도 맞으면 가장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낳게 되지만 말이다.

거니는 조사를 통해서 신부가 정신과의사이면서 성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여학생들을 치료하는 학교의 경영자였던 신랑의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 학교 졸업생들 중에서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 학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부와 그 졸업생들 사이에는 또 어떤 연결관계가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한 명의 사건인줄로만 알았던 사건이 바야흐로 연쇄살인사건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또한 그 모든 사건을 저지르고 다닌 범인은 누구일까. 그 역시도 신부의 용의자로 꼽히는 그 멕시코인 정원사가 꾸민 일일까. 범죄를 피해서 은퇴를 하고 전원생활을 누리려는 거니 부부에게는 평안한 나날들만 계속될까.

독자들이 심심해할까봐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을 던져주면서 조련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이끄는대로 내미는 먹이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인가 막다른 코너에 몰려서 어느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꼬인 실타래는 푸는 것도 어렵지만 막다른 골목에서는 어찌할 바를 찾기 어렵다. 다시 그곳을 벗어나와야 한다. 그래서 잘못 들어간 길부터 다시시작해야 한다. 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중간중간 놓인 트랩들을 잘 피해가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싱크홀을 만나서 빠지는 것처럼 그런 곳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미로속에 빠지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다.

당신은 거니의 오른팔이 되어서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은퇴를 계기로 더 활발히 행동하는 전직형사 거니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이제까지 반대를 하던 아내의 허락을 구해서 본격적인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특징을 가진 서브캐릭터가 나타나서 거니의 일을 도와줄지도 궁금하다. 잭 하드윅과의 호흡도 꽤 좋았으니 그 콤비 그대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봐도 나쁜 선택은 아니니라 본다. 단 두권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확실히 준 작가 존 버든. 그의 세번째 이야기인 ‘악마를 잠들게하라’가 출간되었다니 그 작품 역시도 기대할 가치가 충분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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