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엘리야는 길은 안다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생전에 발간하지 않은 내용들이 죽음 후에 출판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인가 또는 불경한 것인가를 생각나게 만들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마크 트웨인이 정말 이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염세적인 세계관을 보게 된다. 마치 신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과연 마크 트웨인은 이 내용이 출판되기를 원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우리는 생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면 이전과 많이 달라지는 것을 누구나 경험한다. 특히 마크 트웨인이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게 되고 그것은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참으로 혹독한 겨울 매서운 추위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는 그리움들이 사무치게 되면 절대자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왜 신은 이 같은 시련과 아픔을 주는지 생각하면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보면 끊임없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신이 창조하신 세계가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냥 편하게 신은 없고, 우리 모두는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사라지는 존재이고, 단 욕심은 무한정 많아서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의 것을 기쁜 마음으로 뺏는 것을 즐기는 자들이 인간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해지게 되고, 자기 자신도 기쁜 마음으로 억압과 착취의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기존에 있는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그 부정의 재미와 기쁨은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인냥 모든 것을 부정에 의한 부정을 하고야 만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부정하고, 천사와 사탄이라는 존재도 부정하고 나아가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도덕과 윤리개념까지 부정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느낌은 빛보다는 어둠이고, 따뜻함보다는 매서운 차가움이 느껴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크 트웨인의 아픔을 보게 된다.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을까?” 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야?” 하면서도 “그래… 정말 많이 힘들었나보다”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힘든 것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을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악하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 만나는 것이 기쁨이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2015년이 이제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과연 나는 올 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바뀌었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 플러스 점수보다는 마이너스 점수를 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내 힘을 의지하지 말자. 오직 도우시는 하나님 바라보며 주님을 날마다 의지하자.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엘리야는 길은 안다

이 책은 한국교회에 수많은 걸출한 사역자들을 배출하는 교회로 유명한 내수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지웅 목사님의 책이다.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저자는 엘리야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과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잘 전하고 싶고 책의 내용을 더 잘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내가 만난 신앙의 선배들 중에서 특히 엘리야라는 인물은 첫사랑과도 같은 존재다”(p. 6).“엘리야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중략) 엘리야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성공이다.”(p. 8).

개인적으로 목회자인 평자 개인적으로도 엘리야는 참 알고 싶어지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가장 먼저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만난 두 명의 가운데 한 사람이 엘리야일 정도로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 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엘리야의 사역에 대한 평가가 각양 각색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불의 선지자’라는 호칭과 함께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은 자라는 평가와 함께,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자신을 대중 앞에서 자랑하려고 했던 선지자라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역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이기에 과연 엘리야는 어떤 사람인가 추적해 가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의 묘미이다.

일단 엘리야의 갈멜산 사건을 이 책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바알’이라는 ‘번개의 신’에게 싸움의 우선권을 넘겨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싸움의 우선권을 넘겨주는 것을 통해서 참 신, 살아있는 신이 누구인지 증명해 내려고 하였다는 것으로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또한 책 전반적인 내용을 읽으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근거가 좀 빈약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는가?”라고 질문한 뒤에, “이러이러하기에 그렇다”는 설명은 독자의 측면에서는 좀 아쉬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귀납적이기 보다는 연역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전제를 정해놓고 설명을 해버리면 성경이 주관적인 해석으로 기울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엘리야의 심정 또는 엘리야의 사건들에 대해서 주해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큰 장점은 성경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독자들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려는 목회자의 목회적 마음과 설교를 통한 그 작업이 매우 충실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큰 장점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성도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를 통해서 때로는 정면교사로 때로는 반면교사로 신앙에 유익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원하기로를 목사님을 통해서 다른 인물들의 심층연구도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엘리야를 공부하고 싶은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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