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고백, 로맨틱 크로아티아, 차단

쑥스러운 고백

이 책은 예전에 나왔던 책을 다시 펴낸 책이다. 1977년에 나왔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다시 엮어 놓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읽지 못했다면 요즘 쓴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도 하다. 가끔 나오는 버스를 탈 때 얼마를 주었다거나 아니면 버스 안내양에게 하는 말이라던가 또는 시장에 가서 쓴 돈이 얼마라던가 하는 것을 통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박완서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시대적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말이다. 보통 에세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고 또한 그 당시 시대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후에 읽으면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거나 아니면 자신이 경험을 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뭐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 책만큼은 도저히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학을 간 여학생들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현모양처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그럴 것 같으면 무엇하러 대학을 왔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아이를 잘 가르치는 법이라던가 또는 요리하는 법이라던가 하는 것을 따로 만들어서 현모양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따로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학이 인생의 궁극의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도 하고 있다(148.p) 다들 사람들이 가기 때문에 나도 간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가장 인재들이 모여있다는 서울대를 다녔다. 물론 전쟁때문에 그 이후로 학업을 계속하지는 못했지만 그 곳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소리다. 그런 그녀가 한 말이니 왠지 모르게 더욱 신빙성 있게 들린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전문적인 것을 배우러 가는곳이 대학이 되어야지 단지 멋진 “레테르”를 따려고 가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이라는 말이 없어졌다는 말로 여성차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굳이 여성이라는 말을 넣어서 여성을 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필요가 없게 될만큼 동등하게 취급이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생각한 것이 70년대인데 그보다 30년도 지난 지금에도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있는 것을 보았을때 조금도 변한게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매번 달라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달라지는 게 없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여성’인것을 생각한다면 여성의 위치가 조금은 변했다고 작가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책이 그녀의 첫 산문집인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글이 약간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또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있었던 자신의 생각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도 날카롭게 비유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짧은 이야기속에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은밀히 내보이면서 사회적인 면까지 다루고 있으니 첫작품이라도 그녀의 대단한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제목인 ‘쑥스러운 고백’은 아마도 근로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에게 보내는 격려사가 아닐까 한다. 그중에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의나 타의에 의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그들을 대상으로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면서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는 그 말 그대로 ‘쑥스러운 고백’을 한다. 그 말을 읽는 가운데 작가의 모습이, 약간은 겸연쩍어 하는 그녀 특유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내심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녀가 했던 그 고백을 통해서 더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녀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글이 남아 있어서 지금 이라도 이렇게 또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하는 나의 ‘쑥스러운 고백’이다.

로맨틱 크로아티아

컬러링 열풍이 계속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여러가지 형태의 컬러링북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주위에 흔히 볼수 있는 사물들을 색칠하기 좋게 구획을 나눈 책도 있고 독특한 패턴을 준 책 도 있고 또는 어떤 특정한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그 나라의 특색을 살린 책들도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같은 시기에 나온 ‘솔레이유 프랑스’는 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서 ‘파리 시크릿’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이 책은 ‘로맨틱 크로아티아’라는 제목으로 크로아티아에서 볼수 있는 도시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또한 먹을 거리라던가 여러 곳을 소개 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예전에 텔리비젼 여행 프로그램인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번 유행을 탄 적도 있다. 그 이후 크로아티아에 관한 여행책이 불티나게 팔렸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쪽빛바다를 꿈꾸면서 그곳에 가는 것을 꿈꾸기도 했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너무 멀어서 차마 아직 가 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그 화면으로 보여지는 공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왔는지.

‘물과 함께 하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곳. 라스토케라는 지명이 나와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에서 이 집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색을 칠하면 더욱 이뻐질테지. 그렇다고 그곳에 있는 집과 똑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돌라체 시장에서 만난 귀여운 인형들’이란 설명과 함께 자그레브라는 지명이 쓰여있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이런 목각인형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인형과 비슷한 모양이긴 한데 누구나 다 여행을 가면 이런 인형 하나쯤은 사고 싶지 않을까.

‘생파를 곁들인 양고기 바베큐’. 아마도 현지에서 직접 먹을수 있는 그런 음식들이지 싶다. 여행을 가면 적어도 그곳의 현지음식을 한번쯤은 먹어 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나오게 된 그런 그림일듯 하다. 작가가 직접 발로 뛰며 크로아티아의 이곳 저곳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흔적이 보이는 한권의 책. 단지 컬러링뿐 아니라 여행의 효과도 같이 주는 그런 책으로 보여진다. 이 책을 보니 더욱 그곳에 가고 싶다. 크로아티아의 절경이라 부르는 두브로브니크의 전경. 그 그림을 칠해보고 그 그림을 가지고 직접 그곳에 가서 그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본다면 그 느낌 또한 새롭지 않을까.

차단

‘눈알수집가’와 ‘눈알사냥꾼’으로 이미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작가 피체크. 어찌된 이유인지 한번 처음 책이 나왔을때 딱 내켜서 읽을 기회를 잡지 못하면 그 이후 그 책과는 다시 인연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책들 또한 그러했다. 한창 피크일때 몇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미루다보니 어느새가 다른 책에 밀려버리고 읽지 못했고 간간히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통해서 대단한 책이라고만 들어왔었다. 제목부터 무언가 끌리는 매력이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전작에 비해서 약간은 평범해보이는 제목의 [차단]. 무엇으로부터, 또는 누구로부터 차단을 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또 전작과는 다르게 천재 법의학자 초코스와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왜 굳이 법의학자를 필요로 했을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법의학자라고 불리는 그가 이 작품에서 함께 해야 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이야기가 진행이 되어 갈수록 왜 꼭 그 사람이 필요했는지 이유는 분명해진다. 이런 식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 공저로 나온 작품 중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비스트]를 들수 있겠다. 안데슈 루슬룬드라는 작가와 버리에 헬스트럼이라는 전과자 출신의 작가. 그 둘은 힘을 합해서 각기 자신의 분야에 전문성을 발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어 비스트와 더불어 [리뎀션]까지 연작으로 히트를 쳤다. 워낙 뛰어나고 생생한 묘사로 인해서 아마도 그 다음에 작품이 나온다 하더라도 믿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 군단이다. 전직 범죄자를 작가로 한 그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법의학자가 쓴 책이고 그만큼 그의 전문분야가 드러날 차례이다. 그 진가는린다가 해부를 해야 하는 부분에서 생생히 드러난다. 작가가 아무리 사전 조사를 하고 직접 참관을 한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부분은 수박 겉핡기가 되어 버리기 쉽다. 하지만 전문가가 포함되어 쓰여지면 그것은 달라진다. 확실히 전문가의 필치가 드러나고 전문성이 발휘됨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 이야기에 파묻혀서 읽을수 있게 된다.

유명한 법의학자 헤르츠펠트는 어느날 한 시체를 부검하다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속에 숨겨진 하나의 캡슐. 조심스럽게 끄집어 낸 것은 생각한 것처럼 총알은 아니었고 열 수 있게 생긴 그 캡슐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한장의 종이가 들어 있다. 전화번호처럼 보이는 숫자. 그리고 여러 알파벳. 단순한 알파벳인줄 알았던 그것은 자신의 전처가 키우고 있는 딸의 이름이었다. 순식간에 소름이 돋은 그. 당장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아무도 받지않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고 마는데 그 사서함에서는 절박한 그의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구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절대로 사법당국에 알리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알려서 경찰의 도움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대로 그들이 시키는 대로 또다른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딸은 천식을 가지고 있어서 약이 없으면 금방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알고 약을 다 챙겨가긴 했을까.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한 영화가 생각이 났다. [그놈 목소리]. 아이를 유괴해 간 그놈이 단지 전화를 이용해서 협박하는이야기. 목소리로만 사람을 찾아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아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필요한 것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긴적으로 너무 야비하고 잔인한 방법이리라 생각되어진다. 그것이 비단 눈에는 눈, 이에은 이, 내 딸에는 네 딸이라는 적극적인 대응방식을 집어넣어도 그러하다. 내딸이 잘못되었다고 네 딸을 내놓아라 하는 것은 정확히 구약시대에 나오는 율법과 똑같은 이치이기는 하나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일 뿐이다.

이야기는 두 상황을 교대로 보여준다. 스토커를 피해서 섬으로 도망간 만화작가 린다. 그녀는 그곳에서는 스토커가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폭풍으로 섬으로 들어가는 모든 교통수단이 전무하는 이 시점에서 그녀는 섬에서 그의 흔적을 느낀다. 그는 정말 이 섬에 있는 것일까. 그에게 너무 시달린 그녀가 허상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가 정말 그녀를 쫓아왔다면 과연 그는 어떤 방법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이 섬에서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하나의 희망이라도 붙들듯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지만 오빠는 자신이 다 처리를 했다고만 할 뿐 그녀를 안심시키지는 못한다. 집안에서 그가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고 폭풍이 몰려오는 가운데 바닷가로 도망간 그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육지로 피난을 가서 인적이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한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게 된다. 이 시체는 또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이 시체를 어떻게 할까. 그냥 무시할까 아니면 대피처에 가서 사람들에게 시체의 발견사실을 알릴까. 그리고 이 시체와 그녀와 그리고 이 곳에 있지 않는 법의학자 헤르츠펠트는 또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일까. 아무 지식이 없는 린다는 어떻게 전화상으로만 듣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부라는 전문적인 행동을 할수 있는 것일까.

도시와 섬, 추적을 하는 자와 추적을 당하는 자. 쫓아가는 자와 갇혀 있는 자. 이야기가 교대로 나타남으로 인해서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듯이 스릴이 물밀듯이 넘어 온다. 한 사건이 마무리 되었나 싶으면 또 다른 사건이 파도를 타고 넘어온다. 각기 혼자서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파트너가 우연히 붙어지게 된다. 이 작가가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쓰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읽지못했던 전작들이 새삼 아깝다. 기회가 닿지 않아 읽지 못했다면 일부러라도 찾이서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제목이지만 절대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반전은 기본 설정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또다른 설정이 준비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오던 파도가 쓰나미급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자신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면 그 서핑보드를 단단히 잡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준비해 놓은 쓰나미급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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